내가 본 Berlin 2019 & Ellain Berlin 1960

2019년 나는 출장으로 독일 4개 도시에 다녀온 적이 있다.

목적은 독일 주요 도시에 대한 투자와 관련하여 라인강 유역의 뒤셀도르프에서 출발하여 유럽 금융 중심지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유서 깊은 대성당의 도시 쿠알룬을 거쳐 수도 베를린에 들렀다.

그런데 베를린은 기존에 들른 독일의 대도시와는 전혀 달라 가장 인상 깊은 도시였다.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대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독일이 될 정도로 통일도 느리고 지방분권이 발달하여 각 지역마다 주요 도시가 산업별로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매우 많은 메트로폴리스가 없고 대부분 100만명 이하가 많다.

그리고 도시의 분위기는 근면 성실하고 실질적인 독일인의 특성상 보수적이고 평온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수도 베를린은 인구도 비교적 많은 350만명 수준이어서 젊은 청년들의 비중이 높다.

그래서인지 다른 독일 도시에 비해 역동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도시의 위치가 구동독 지역에 있으면서 개발이 미흡한 동베를린 지역과 세련된 서베를린 지역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마치 삶과 세련된 것이 공존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 고층 빌딩이 많지 않은 대신 기존의 낡은 도시를 리뉴얼해 최근 말로 힙하다는 느낌도 강했다.

베를린에 머물렀던 호텔 1층이지만 오래된 동물원 앞 건물을 그대로 살리고 디자인적 요소를 더해 힙한 느낌을 준다.

나는 베를린에서 며칠 머물면서 영화 같은 시대의 브란덴부르크 문과 미술관, 박물관, 베를린 필하모닉도 들렀는데 어두웠던 시대의 상징인 홀로코스트 기념물과 분단 시대의 벽에 들렀다.

그렇게 베를린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며 성장하고 있어 더욱 인상 깊었을지도 모른다.

해질녘 브란덴부르크 문-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1791년 개선문으로 세웠다.

이후 프로이센이 독일 무르를 통합함으로써 베를린, 독일의 상징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 문을 경계로 동서독의 경계가 나뉘었는데 분단과 통일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건물

카이저 빌헬름 1세 교회-1895년 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회였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잔혹하게 부서지게 된다.

이후 손상된 교회 일부를 무너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바로 옆에 헥사곤형 새 교회를 세웠다.

포츠담 플라츠에 있는 베를린 장벽 일부-빌딩 안 도심에도 과거의 유산을 남겼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추모기념물-수많은 석관이 늘어선 듯한 느낌도 있어 숙연한 느낌이 드는 상징물이다.

최고의 재즈 싱어로 불리는 엘라 피츠제럴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인 1960년대 초 베를린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당시 베를린은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였고 나치의 인종주의와 재즈 음악에 대한 박해가 절정에 이른 지 불과 15년밖에 되지 않은 시대였지만 엘라는 정치 대륙 인종을 초월한 재즈 공연을 베를린에서 했다.

그리고 이 공연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브 재즈 공연 중 하나가 되었다.

1960년 이 공연은 재즈 레이블 Verve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노먼 그랜츠가 주도한 엘라 피쳐 제럴드의 유럽 투어 첫 공연이었는데 베를린에서 1만2000석 규모의 Deutschlandhalle(올림픽 경기장)에서 공연했으며, 이때 엘라의 나이는 상당히 전성기인 43세였다.

Deutschlandhalle-1936 Summer Olympics를 위해 건설되었으나 1998년에 폐쇄되었다가 2011년에 철거되었다.

또 백밴드에서 피아노 폴 스미스와 기타 짐 홀이 참여한 쿼텟이 함께 연주했다.

공연 실황은 버브 레코드사에서 ‘엘라 인 버린: 맥 The Knife’ 타이틀로 음반이 나왔고 1961년 그래미 재즈 부문 보컬 앨범과 싱글 2 부문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 앨범이 됐다.

앨범에는 더 맨 러브, 미스터리, 서머타임, 레이디 인트램프와 같은 스탠다드 곡 위주로 9개의 트랙이 포함되어 있는데, 모든 곡이 훌륭하지만 타이틀곡인 맥 더 키니프를 제외하면 How High The Moon이 매우 인상적인 곡이지만 엘라의 스캣 창법의 진수를 들려주는 곡이다.

Elain Berlin: Mac The Knife 엘피다이 앨범의 묘미는 타이틀곡인 Mac The Knife다.

엘라가 베를린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른 이유는 작곡가가 독일인 Kurt Weill(1900~1950)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엘라는 그때 처음으로 독일 관중 앞에서 이 곡을 불렀다고 한다.

쿠르트 바일은 독일계 유대인으로 베를린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1928년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협력으로 삼문 오페라를 작곡해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좌익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로부터 국외 추방당했고 이후 미국에 정착해 재즈 기법을 도입한 오페라와 영화 음악을 주로 작곡했다.

맥 The Knife는 ‘3분의 오페라’의 최고 히트곡이지만 블루스 형식을 도입한 민요풍이라 친숙한데다 1954년에는 영어 버전으로 가사가 붙어 롯데 레냐 주연의 미국 공연으로 크게 알려졌다.

가사 내용은 Mac이라는 부랑자의 강도와 살인에 대한 풍자인데, 이 공연 이후 1956년 루이 암스트롱을 시작으로 1958년에는 바비 달링 버전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Ela는 1960년 베를린의 수많은 독일 관중 앞에서 좌익에서 유대인, 그리고 독일인이자 미국 작곡가가 된 쿠르트 바일의 Mac The Knife를 불렀다.

그리고 이전의 어떤 버전보다도 멋지게 불렀다.

그런데 위대한 가수들도 가끔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엘라는 이 곡을 부를 때 가사를 잊어버렸다.

하지만 재즈의 디바다답게 순발력을 갖고 위트로 나아가며 그의 특기인 스캣까지 최대한 활용해 불렀다.

그런데 그녀의 이 노래에는 위트와 함께 친애하는 루이 암스트롱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 있다.

엘라는 노래 후반부 가사에서 루이 암스트롱과 바비 포함 버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루이 암스트롱을 모방한 창법도 선보인다.

재즈가 작곡가보다 연주자의 음악에 가깝다면 엘라는 정말 즉흥 연주의 대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엘라의 베를린 공연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베를린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기 때문인지 곧 다시 베를린을 찾았다.

60여 년 전 엘라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베를린은 특히 기억에 남는 도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1960년 Elain Berlin 앨범을 들을 때마다 나의 원톱 재즈 가수 엘라 피쳐 제럴드와 함께 힙한 베를린을 떠올린다.

이 긴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가볼 수 있겠지!

https://youtu.be/yFlkzTpeOX8https ://youtu.be/N5kLch0BX98https ://youtu.be/iR1__k-BxhY